[연재] 두곡동 수성최씨 집성촌 이야기

진길장의 오산 집성촌 이야기

신동성 | 기사입력 2020/08/06 [04:44]

[연재] 두곡동 수성최씨 집성촌 이야기

진길장의 오산 집성촌 이야기

신동성 | 입력 : 2020/08/06 [04:44]

오산시 두곡동은 수성최씨 집성촌이었다. (사진, 현재 두곡동 마을 모습)   © 진길장

 

두곡동 수성최씨(隋城崔氏)의 시조는 신라 경순왕 김부(敬順王 金傅)의 13세손이며 본래 성이 김씨인 최영규를 시조로 하고 있다. 그는 고려 원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남조전서에 재직하면서 보문각대경(寶文閣大卿)을 겸직하였고, 서경의 학도들을 맡아 가르쳐 그 명망이 높았다.

 

충렬왕 때 수주(水州) 일대의 풍속을 바로잡아 왕이 그를 최씨로 사성(賜姓)하고 수성백(隨城伯) 문혜공(文惠公)으로 하사하여, 이때를 시작으로 수성최씨 시조로 하고 있다. 수성최씨 주요 세거지로 가평군 북면 이곡리, 송탄읍 가재리, 송탄읍 모곡리, 포승면 내기리, 도곡리, 양감면 송산리, 오산시 두곡동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두곡동은 행정구역 개편 전에 ‘말여울’이라 불리던 곳을 1910년 일제 강점기 때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마유동(馬遊洞)으로 했다가 1913년경 총독부에서 다시 행정구역을 변경하면서 두곡동(斗谷洞)으로 개정해 지금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두곡동은 본래 두곡1동 2동으로 나눠졌었으나 세교지구 도시계획에 의해 현재 2동은 거의 멸실되고 두곡1동을 중심으로 약 70세대가 마을을 이뤄 살고 있다.
 
수성최씨가 오산시 두곡동에 입향하게 된 것은 1650년경 14세 최순운으로 대략 370여 년 전으로 여겨진다. 현재 두곡동 뒤편(수월암리)에 최순운의 묘가 남아 있어 근거로 하고 있다. 1933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펴낸 『조선의 취락』과 1957년 경기도에서 발간한 『경기도지』에 나와 있는 자료를 살펴보면 1933년 두곡리 수성최씨 세대수가 30호가 되었고, 1957년 두곡리 수성최씨 세대수가 31호에 이르렀다.

 

오산시 두곡동 수성최씨 최정린 효자정려문   © 진길장


한편, 오산시 두곡동에 수성최씨 효자정문이 있는데 최정린(崔廷隣1760~1799)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조정에서 순조 31년(1831) 조봉대부동몽교관(朝奉大夫童蒙敎官)으로 추증하고 1986년 자손들이 두곡동 후록에 효자정문(孝子旌門)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정린은 어릴 때부터 부모를 잘 공양하고 형제간에 화목하고, 이웃을 돌보며 청빈한 삶을 살았다. 나이 10세 때 부친이 쟁기에 엄지손가락을 다치자 이를 치유하기 위해 자신의 허벅지살을 칼로 찔러 피를 내어 말린 것을 부친의 다친 곳을 치료하였고, 모친의 혈허병을 치료하기 위해 한겨울에 가물치를 잡아 달여서 모친의 병을 낮게 한 일등 효행이 알려져 있다.


나이 40세에 세상을 떠나니 주민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다고 한다. 이에 조정에서 그의 효행을 귀하게 여겨 조봉대부로 추증하고, 고종 22년(1885)에 정판을 세웠다. 정판에는 ‘上之二十二年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崔公廷麟之門乙酉五月日命旌’이라 각자되어 있다.

 

또한, 두곡동에는 최정린의 증조부 최차흥(1676~1732)묘와 22세 사천현감 최건혁의 묘가 있었다. 집성촌은 대개 사회적으로 유력한 양반, 유림 등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오면서 종가를 중심으로 선조의 제례, 상호부조를 통해 협동 단결함으로써 향촌 자치를 이루고 그 지역에서 권세를 가진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볼 때 두곡동의 수성최씨 집성촌은 산업화, 도시화 과정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전통문화의 뿌리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농업 기반 사회가 무너지고 산업사회로의 변화 속에 우리나라 대부분 마을들이 그랬듯 이곳에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이 집성촌의 기능이 차차 약화되어 갔다. 다만 몇몇 후손들이 선산을 관리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유음덕 후필창(有陰德 後必昌)이란 말이 있다. ‘조상이 덕을 쌓으면 후손이 그 덕을 받아 반드시 번창한다’는 격언이다. 이는 두곡동 수청최씨 집안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조봉대부 동몽교관 최정린공의 지극한 효심과 마을 백성에게 보여 준 덕행이 후손에게 전해져 자손이 크게 번창하고 훌륭한 인물이 배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여겨진다.


두곡동 수성최씨 집성촌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에 두각을 보인 인물을 살펴보면 조봉대부동몽교관 최정린의 증손자인 사천현감 최건혁, 5세손 화성궐리사 도유사 최봉희, 해군대장 및 합동참모본부 합창의장을 역임하고 현재 미래통합당 오산시 당위원장인 최윤희, 6세손 해군대령 본부병무청장 최원기, 오산읍장 최원빈, 오산시의회의장 최원헌 등 이들이 두곡동 수청최씨를 빛낸 인물이다. 

 

 진길장 선생

 

진길장(陳吉章)


용인 남사 출생. 오산중•고, 한신대학교 대학원 역사교육학과 졸업. [경기민족문학] 작품 발표. [사람과 땅의 문학] 동인, 『사람과 땅의 문학』 동인지 간행, 주요작품 「연지골 편지」 「흔치고개 휴게소에서」 「불악정에서」 「처서 무렵」  「유월」  「여름」  「靑源寺」  「입동소묘」 등 다수. 한국문인협회 오산지부 부회장, 오산성심학교 교사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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