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진길장의 오산 집성촌 이야기

오산의 전통적 자연마을 집성촌 이야기 연재 기획

진길장 | 기사입력 2020/07/24 [16:50]

[연재] 진길장의 오산 집성촌 이야기

오산의 전통적 자연마을 집성촌 이야기 연재 기획

진길장 | 입력 : 2020/07/24 [16:50]

집성촌이란, 동족 마을이라고도 부르며 성씨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집성촌의 근원은 원시사회에서 씨족 생활이 이루어지듯 근대 도시 사회로 발전하기 전까지 조선 사회에서는 성리학적 종법 질서를 바탕으로 같은 씨족끼리 모여 사는 집성촌을 이뤄왔다.

 

우리 민족이 성(姓)을 가진 것은 아득히 먼 옛날이다. 왕족이나 귀족은 일찍부터 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천민이나 노예는 근대사회까지도 성이 없이 존재하였다.

 

대게 성씨가 보편화된 것은 고려 초부터라 볼 수 있는데, 태조 왕건이 호족 세력을 바탕으로 집권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으므로 각 지역의 호족을 통합하는 수단으로 성을 주었던 것이다.

 

고려 태조의 개국공신인 신숭겸, 배현경 등도 처음에는 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대부분의 성씨가 고려 초에 그 시조(始祖)두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이후 고려왕조에서 나라에 공을 세웠거나 큰 업적이 있는 자의 연고를 본관으로 삼아 성을 하사받는 경우가 생겨났다.

 

이후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서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강조하면서 숭유억불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였다. 조선왕조가 추진하는 성리학적 지배 이데올로기는 중종 연간을 지나면서 서서히 지방 양반과 일반 백성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고려 시대의 관습인 남자가 처가로 장가가는 혼인, 재산의 균등 상속, 제사의 윤회봉사(輪廻奉祀)의 관행이 이어졌다. 이러한 관행은 자녀와 내·외손들을 한마을에 함께 사는 이성잡거(異姓雜居)의 거주 현상을 낳게 하였다.

 

한편, 이러한 조선 전기의 관습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점차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남귀여가의 혼인은 여성의 출가로, 재산의 자녀 균등 상속은 차등 상속으로, 제사의 자녀 윤회는 장자전행(長子專行)으로 바뀌면서 점차 부계 친족이 중심이 되는 동성의 집성촌 마을이 생겨나고 그러한 관행은 조선 말기까지 성행하였다.

 

그 후 1945년 해방과 좌우익의 대립, 6䞕전쟁을 거치면서 조선 시대의 신분 질서가 결정적으로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또한 1960년대 경제개발 추진 과정에서 농촌 인구가 도시로 이동하면서 집성촌 기능은 점차 와해 되어 갔다.

 

한편, 집성촌이 형성되었던 과정을 살펴보면 한 종족이 어느 한 마을에 계속해서 여러 대에 걸쳐서 거주하는 경우와 자기 마을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새 마을을 구성하고 후손들이 그 마을을 계속해서 발전시킨 예도 있다. 집성촌 발생 요인의 하나로 우리 사회가 혈연공동체 생활을 영위한 데서 온 유습을 들 수 있다. 마을의 제반 행사에 모두가 힘을 합하고, 향촌 사회의 노동집약적인 일들도 자발적으로 상부상조하며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동족 마을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오산은 1989년 시로 승격된 후 이제 30년이 되었다. 그 이전 시로 승격될 때까지 독자적인 행정 단위로 기능하지 못했다. 따라서 각종 통계 자료와 문헌에서 오산에 살았던 성씨를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또한, 산업화 도시화 과정속에 오산도 예외일 수 없이 많은 자연마을이 택지개발로 인해 사라졌다. 또한, 핵가족화가 확대되면서 전통적 유교 개념이 점점 희미해지고 공동체적 삶의 개념에서 개인주의적 삶의 방식으로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한편, 현재 오산시 세교1지구와 세교2지구의 택지개발로 사라진 대표적인 자연마을은 금암동, 외삼미동, 궐동, 수청동, 세교동, 누읍동, 탑동, 가수동 등 대부분 전통 자연마을이 멸실 되었다. 이와 함께 이 지역에 형성되었던 집성촌도 자연적으로 소멸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현재 오산에 전통적 자연마을로 남아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이에 오산 각 지역마다 자연마을로 남아 있는 곳을 찾아 집성촌을 이루었던 성씨의 입향조를 중심으로 선산에 조성된 묘소, 기타 집성촌을 형성했던 전통 마을의 흔적을 알아보고, 아직까지 집성촌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지, 유지하고 있으면 어떤 형태로 이어지고 있는지 그 속에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는지 살펴보고자 앞으로 오산 지역 언론사 <오산인포커스>를 통해 연재하고자 그 시작을 알린다.

 

진길장 선생

 

진길장(陳吉章)


용인 남사 출생. 오산중•고, 한신대학교 대학원 역사교육학과 졸업. [경기민족문학] 작품 발표. [사람과 땅의 문학] 동인, 『사람과 땅의 문학』 동인지 간행, 주요작품 「연지골 편지」 「흔치고개 휴게소에서」 「불악정에서」 「처서 무렵」  「유월」  「여름」  「靑源寺」  「입동소묘」 등 다수. 한국문인협회 오산지부 부회장, 오산성심학교 교사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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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산신씨 2020/07/25 [11:07] 수정 | 삭제
  • 평산신씨 장잘공파 원 조상인 신숭겸 장군의 이야기가 있어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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